| ||||||
![]()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 Knock-In Knock-Out)’의 약관에 대해,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로써 키코를 둘러싼 은행과 중소기업 간의 갈등이 법정에 오르게 될 전망이다. 키코에 가입해 손실을 본 신화플러스 등 8개 수출중소기업들은 지난 6월, 외환은행 등 7개 은행의 키코 약관이 기업들에 불공정한 거래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공정위에 약관심사 청구서를 제출했었다.
키코는 어떤 상품?
키코는 통화옵션상품의 한 종류로 ‘환 위험 헤지(회피)’상품이다. 통화옵션이란 원화와 달러화의 교환 등 서로 다른 통화를 일정 환율로 교환하는 파생금융상품이다. 계약자는 약정에 따라 통화옵션에 다양한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
키코에 가입하면 만기시 환율이 약정한 범위내에 있을 경우에는 지정 환율로 외화를 팔 수 있다. 하지만 환율이 약정 범위의 하한보다 낮아지면(녹아웃. Knock-Out) 계약이 무효가 된다. 이 경우 환율 하락에 따른 손실을 그대로 기업이 부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약정 범위의 상한보다 환율이 높아지면(녹인. Knock-In) 계약금액의 2~3배에 해당하는 외화를 시장환율보다 낮은 약정환율로 은행에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계약기간 1년 동안 약정 환율(행사가격-상자기사 참조)을 1000원, 약정범위는 950원(약정환율의 5%)에서 1025원(약정환율의 2.5%)으로 갑(기업)이 을(은행)에게 매달 50만 달러씩 팔기로 계약을 했다고 하자. 이 기간 동안 한 달 단위로 환율이 950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950원과 1000원 사이에 있으면 기업은 외화를 1000원에 팔 수 있으므로 환차익(환율변동에 따른 이익)을 얻는다. 또 환율이 1025원을 넘지 않고 1000원과 1025원 사이에 있으면 시세환율로 외화를 판다. 그런데 환율이 1025원 이상이 되면 계약물량의 2~3배인 100~150만달러를 1000원에 팔아야 한다. 만약 수출대금이 100~150만달러가 안되면, 시장에서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달러를 사서 싼 값으로 은행에 팔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은행, 키코의 위험 고지 안했다
수출중소기업들은 왜 키코에 가입했을까.
수출기업들은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보장된 환율로 환전하기를 원한다. 만약 환율이 떨어지면 그만큼 환차손(환율변동에 따른 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환율이 계속 하락할 것이라 예상하면 향후 수출대금으로 받을 외화를 적정한 환율로 환전하기 위해 키코와 같은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올 봄, 정부의 고환율 정책 탓에 환율이 급상승했다.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었다. 현재까지 확인된 손해액만 2조5천억원 정도다. 보통 1년 만기로 설정된 키코의 판매량이 지난해 11월부터 올 초까지 급증했다고 하니, 환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는 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환헤지 피해를 입은 수출중소기업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은행에 대한 집단대응에 들어갔다. 이들 기업들은, 은행이 공격적으로 상품 가입을 권유하면서도 키코 가입에 따른 위험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은행들이 키코를 판매하면서 환율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만 강조했지 환율상승에 따른 위험에 대해서는 경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은행은 기업에 비해 금융 지식과 정보를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변동할지에 대한 예측 또한 은행이 앞선다. 은행들이 이러한 이점을 활용해 키코의 유리한 측면만을 부각시켜 수출기업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예상과 엇나간 환율로 인한 피해가 커졌다. 환헤지 피해로 폐업위기에 몰린 기업
한 의류 제조업체는 환헤지 피해로 폐업위기에 내몰렸다.(아시아경제 2008.6.3) 이 회사는 올 1월부터 5월까지 3400만원에 이르는 손실을 입었는데 이 금액은 2년간의 영업이익에 해당한다. 이 업체는 거래은행으로부터 통화옵션상품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수차례 받았다. 수출기업에게 탁월한 상품이므로 금전적 이익을 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가입 이후 계약서를 보니 계약조건이 불공평하고 부담이 클 것이라 판단해 은행측에 해지를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상품을 중도에 해지하는 것도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시중은행들은 “기업들이 위험부담이 있는 파생상품에 자발적으로 가입하고 나서 손실이 발생했다고 은행에 물어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환율이 떨어질 거라며 가입을 유도했던 책임을 전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공정위, 은행 손 들어줘
이미 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기업이 있고 다른 수출기업들의 소송도 이어질 것으로 보여 최종적인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공정위의 이번 판단은 일단 은행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공정위 약관심사자문위원회는 키코 상품의 약관이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만기환율이 녹인(knock-in) 환율과 녹아웃(knock-out) 환율 사이에 있는 경우에는 고객에게 유리하고, 그 밖의 범위에서는 고객에게 불리하게 되는 등 일방적 계약은 아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일방적 계약이 아니라는 공정위의 판결과 달리 키코는 은행에게 그다지 불리한 상품이 아니다. 은행은 시중환율이 계약환율보다 5% 정도 떨어질 때만 기업으로부터 외화를 구매할 책임이 있다. 더군다나 상품을 판매하면서 수수료도 챙겼다. 반면, 기업은 환율이 계약환율보다 2.5% 정도 상승하기만 해도 계약금액의 2~3배를 의무적으로 팔아야 하기 때문에 과다한 손실발생에 대한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다. 물론 공정위의 판결은 약관 자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일 뿐 은행이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기업에게 불리한 약관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점 등에 대한 판단은 남아있다. 박도하 공정위 약관제도과장은 “이번 약관심사는 문언적 의미만을 심사한 추상적 심사”라면서 “은행들이 키코 상품과 같이 아주 복잡한 손익구조를 가진 고위험 상품을 금융지식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에게 제대로 설명했는지 여부는 법원을 통해 가려질 문제”라고 말했다. 파생금융상품이란?
키코와 같은 파생금융상품은 말 그대로 채권이나 주식, 외환 등의 기초자산으로부터 ‘파생’된 상품이다. 이러한 기초자산들의 미래 가치(또는 가격)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변동한다. 따라서 장래의 가격변화에 대한 예상을 기초로 상품을 사거나 판다.
미래의 어떤 시점에 특정가격으로 거래할 것을 현재 약정하는 것(선도·선물계약), 미래의 특정 시점이나 기간동안 약정한 행사가격으로 사고 팔 권리를 현재 사고파는 것(옵션), 미래의 현금흐름을 교환하는 것(스와프) 등이 모두 파생금융상품에 해당한다. 주식지수, 금리, 통화 등 상품의 대상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키코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투자자들은 미래의 가격변동에 따라 발생할 위험을 헤지하고자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한다. 위험을 피하고 싶은 투자자로부터,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더 높은 수익을 원하는 투자자에게로 위험이 전가되는 것이다. 만약 위험을 떠안은 쪽이 미래의 가격변동을 정확하게 예측했다면 그에 따라 큰 수익이 보장된다. 왜 거래가 증가할까? 전세계적으로 파생금융상품의 거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파생금융상품 시장이 현물시장보다 더 크다. 옵션거래량은 세계 1위, 선물거래량은 세계 5위다. 파생금융상품은 왜 이렇듯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위험을 헤지할 필요성이 증대했기 때문이다. 변동성이 크면 불확실성도 커지고, 따라서 장래에 금융자산의 가격변동위험을 회피할 유인이 생긴다. 또한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파급과 함께 규제완화가 이루어지고 자본시장의 국경도 허물어지면서 각 나라 시장 간의 자금이동이 활발해졌다. 특히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한 선진국의 증권회사, 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파생금융상품이 갖는 높은 수익성에 착안해 이를 널리 보급했다. 한국의 국민연금의 규모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신장한 연기금·보험과 같은 자산들이 운용될 필요가 높아진 것도 파생금융상품의 확산에 기여했다. 이러한 자산들의 운용을 위해, 이른바 금융공학으로 설계된 최첨단 투자기법인 파생금융상품이 급속히 팽창했던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어느 한쪽이 위험을 피하면 다른 한쪽은 위험을 떠안게 되고 갑이 이익을 보았다면 을은 손실을 보게 되어 있다. 파생금융상품은 투자액의 수십, 수백 배에 달하는 수
![]() 환율이 녹아웃되지 않을 만큼만 떨어져준다면 계약금액을 많이 걸수록 수익도 클 것이란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하면 옵션 거래 도입 2년만에 거래량으로 세계 1위에 우뚝 섰을까. 선물, 옵션 거래로 집안 들어먹고 알거지가 되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이 때문에 파생상품의 거래는 도박을 연상시킨다. 파생금융상품은 ‘적은 판돈’으로 대박을 낼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기에 손색이 없는 상품이다. 이른바 레버리지(지렛대) 효과 때문이다. 얼마전 시작된 주식선물은 18%의 증거금만 맡기면 거래가 가능하다. 다시 말해 180만원만 있으면 1000만원을 운용할 수 있다. 주식선물이 18% 뛰면 원금의 두 배의 수익을 얻지만 반대로 18% 떨어지면 원금을 고스란히 날린다. 수익은 크고 위험은 낮은 상품이 어디 있겠는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금융시장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해야
키코처럼 헤지 기능은 떨어지면서 위험은 큰 파생금융상품이 불티나게 팔린 이유는 무엇보다 은행의 과도한 욕심때문이었다. 그래서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은행을 가리켜 ‘S기꾼(사기꾼)’이라며 거칠게 비난했던가 보다. 그러나 밑지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자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은행이 손해를 보며 상품을 팔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품을 판매한 은행에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책임소재를 따지려면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정부다. 정부가 금융시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소홀히 해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구조가 복잡해서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운 파생상품들이 과도하게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을 방치해왔다. 키코를 계기로 파생금융상품 거래의 위험성이 부각됐지만 사실 이것이 어제 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그간 얼마나 많은 개미투자자들이 쪽박을 찼는가. 증거금을 높이든지, 100% 자기 돈만으로 투자를 하게 하든지, 그것도 아니면 위험성이 큰 상품에 대해서는 심사를 해서 규제를 하든지 했어야 한다. 파생금융상품 거래는 투기로 인해 금융시장 전반에 위험을 불러올 수도 있다. 단순히 위험을 헤지하기 위해서만 상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격변동에 따른 시세차익을 노리는 투기거래도 많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효과가 크고 거래구조가 복잡해서 투기적 거래에 대한 내부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금융권의 부실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다. 지금처럼 금융시장의 연계가 심화된 상황에서는 개별 금융기관의 부실이 전체 금융시스템으로 파급될 수도 있다. 투기적 거래에 대한 통제를 포함해 금융시장에 대한 관리와 감독이 시급히 강화되어야 한다. ![]() |
'┣ 슝'세상VIEW > €정치/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리던 헌재판결, 결국 야간옥외집회 헌법불일치로. (2) | 2009.09.24 |
---|---|
각종 언론사들의 만평 _인터넷법?최진실법?의 진상. 언론의 장악. (0) | 2008.10.07 |
루비니 12단계설 , 확실히 들어맞고 있는가. (0) | 2008.09.25 |
금융대격변 "이제 메가뱅크 시대" (0) | 2008.09.23 |
몇 일 전, 몇 주 전, 몇 년 전 당신들의 '유감표명'에 대한 유감표명 (1) | 2008.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