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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슝'세상VIEW/£사회/문화

뮤지컬빨래-웃기고,울리는 도시하층민의 삶

뮤지컬 빨래, 두 번째 관람이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자주 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한 번 이상의 같은 공연을 보고 싶지 않았으나, 많이 힘들어하는 누군가를 위해 꼭 추천해주고 싶어 함께 다시 극장을 찾았다.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공연정보
'지극히 현실적인 그러나 꿈 같은 이야기-뮤지컬 빨래'


 한 걸음 가까이 가보면 늘 우리 주변에 있던 사람들, 이야기들

빨래는 주인공 27살 나영이와 몽골에서 온 솔롱고의 사랑이야기다. 
더 자세히 들어가보면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삶의 모습 이야기이기도 하다.

'자기아이도 싫다며 버리고 나온 동대문옷장사를 하는 돌싱 희정엄마,


'희정엄마네 집에 밥먹듯 드나드는 러브러브 구씨.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 같았던 신체장애 심한 딸을 옆 방에 두고

'30년간 수발하는 주인집할매♡


'불법체류에 늘 몸떨며 사는 주인공 솔롱고의 친구 마이클, 


'고등학교 졸업 후 15년을 서점에서 일하다 하루만에 쫓겨난 직장왕언니. 


'그리고 서울살이 해보겠다며 강원도에서 올라온 서울살이 5년차 나영이


'몽골에서 대학까지 나와 돈 벌겠다며 한국으로 온

'무지개 같은 꿈이 있다는 나라, 그 한국으로 온 몽골청년까지

어떻게, 참 화려하고 불쌍한 삶들이죠.
 

 그들의 삶이 참 슬프면서도 힘 있는 이유를 노래에서 찾다
뮤지컬의 인트로이자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노래, 가사만큼이나 리듬감이 뛰어난 노래. 그리고 서울살이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현실이 담긴 노래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서울살이 몇핸가요
서울살이 몇 핸 가요 서울살이 몇 핸 가요
언제 어디서 왜 여기 왔는지 기억하나요
서울살이 몇 핸 가요 서울살이 몇 핸가요
언제 어디서 무슨일 있었는지 마음에 담고 살아가나요
 
서울살이 십 년
세번째 적금통장 해지 어디어디 살아보셨나요
봉천동 석관동 미아리 옥수동
다니고 다니다 깨진건 적금통장 그리고 부부금실
 
서울살이 육년
네번째 직장 최저임금액 칠십팔만원이면 말 다했죠
생리휴가 육아휴직 그런 것들은 없어요
짤리고 짤리다 늘어간 건 술 담배 그리고 변비
 
서울살이 오 년 여덟번째 직장 (아니 일곱번인가)
연애하다 두 번 (차인게 한번 심하게 차인게 한번)
사랑하다 남은 건 쓰다남은 콘돔
서울 올땐 꿈도 많았었는데 삼 사년 돈벌어 대학도 가고
하지만 혼자사는 엄마한테 편지 한 줄 못 쓰는
내꿈은 내 꿈은
나의 꿈 닳아서 지워진 지 오래
잃어버린 꿈 어디 어느 방에 두고 왔는지
기억이 안나요

  어딘가 서울 한 구석, 다닥다닥 붙은 산 위에 집들을 보면 노래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아마도 그들의 힘은 나와 같은 처지에서 그래도 또 열심히 살아가는 옆 집 사람들, 그리고 연락오지 않는 가족들을 위한 기다림. 오늘 하루도 조금 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마음. 내가 살아 누군가를 지켜줘야 한다는 결심들이지 않을까.

♬ 슬플 땐 빨래를 해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니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뭘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슬플땐 난 빨래를 해
둘이 기저귀 빨때
구씨 양말 빨때
내 인생이 요것 밖에 안되나 싶지만
사랑이 남아 있는 나를 돌아보지 돌아보지
살아갈 힘이 남아있는 우릴 돌아보지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거야
깨끗해지고 잘 말라서 기분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일 하는거야
자 힘을 내 자 힘을 내
자힘을 내 자 힘을 내 어서
 
 모두를 울린 그녀의 솔로곡, 주인공보다 마음가는 주인할매
직접 그 현장에서 들었던 그 목소리와 그 가사들, 이렇게도 살아가야한다며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던, 질타하는 것 같았던, 연극 속의 주인할매의 목소리. 신체장애로 인해 몸도 가누지 못해 이십 여년째 누워만 있는
딸에게 불러주는 주인할매의 미안함이 가득 베어있는 노래가사. 어찌나 목이 메이던지 공연장의 거의 모든 관객들이 눈물을 쏟더라.
  ♬- 옆방 아가씨, 희정이 처럼 너도 구두를 신고 데이트도 하고 싶겠지. 옆방 아가씨, 희정이처럼 너도 ...♬ 하며 목 메이게 부르는 노래는 과히 최고였다.


웃기고, 울리고 감정을 쏟아내게 해 준 뮤지컬 빨래
- 하지만 못내 아쉬운 이 마음..

 솔롱고는 이후에도 행복했을까? 서울서 파주로 쫓겨난 후에도 매일 출근하던 나영씨는 결국 직장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15년간 직장에서 일하다 짤린 언니는?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불법체류로 고국으로 쫓겨난 마이클은? 구씨 아저씨의 아이들은? 희정엄마는 구씨와 결혼했을까?
   빨래에는 다양한 장면들이 나온다. 참 웃기게도 만들고, 눈물을 잔잔히 만들어내기도 하는 이야기들,  무엇보다 정말 현실감있는_ 내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에 더 짠하고 슬프게 다가온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을 조금은 급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내버린 이야기들, 현실에서도 그들의 삶은 그러할 수 있을까?
 
  어렸을때 읽었던 수 많은 동화책들이 떠오른다.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를 믿었던 나이는 이제 지나갔기에 생활도, 문화도, 주위 시선도, 사회적 환경도 만만치 않았을 솔롱고와 나영은 그 이후에도 행복하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학전그린소극장을 나왔다. 


그런데 이거, 남 이야기가 아닐세
나 역시도 어느덧 서울살이 8년, 이사는 5번째, 늘어만 가는 나이^^; 
내 주변에도 어느덧 구석구석 살고 있는 나보다 어린 이민결혼여성들
그리고 수 많은 반지하, 옥탑방, 지하방.
나영이 말하듯 서울은 참 못된 동네 시골에도 없고, 몽골에도 없는 옥탑방, 반지하방들이 가득하게 들어선 곳.
많은 점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뮤지컬을 만들어내주어 고맙다는 마음
그리고 관객들이 꼭 소중히 마음에 담아갔으면 좋을 이야기들.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위한 뮤지컬,
그 노력이 모두에게 응원받고 환영받는 사회가 되길.


♬ 빨래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터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달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얼룩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